무려 45만권! 우리나라의 한 대학이 '폐기'하려던 책의 수입니다. 도서관 소장 장서 92만권의 절반을 그냥 버린다는 계획은 그 규모가 너무 커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들렸습니다. 그중엔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노트를 비롯한 동서양의 귀한 책들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다급히 일부 교수들이 나서 '구명' 운동을 벌였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중 40%를 건져냈습니다. 그래도 27만권은 결국 압착, 용해의 과정을 거쳐 초코파이 상자 같은 포장지로 재활용되는 운명을 피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어느 한 대학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텍스트를 디지털로 저장할 수 있게 된 시대, 종이책은 어느샌가 공간만 차지하고 보존이 어려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습니다. 인류의 지혜가 켜켜이 응축되고 미래 세대가 이어받아온 종이책이 전에 없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낭보에도 우리 시대가 처한 인문학의 위기는 가려지지 않습니다.
한겨레 토요판은 시대와 공간을 가로지르고, 역사와 개인이 얽혀드는 유장하고도 섬세한 '비블로스 오디세이아(책의 오디세이)'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번주는 그 두번 째 이야기입니다.